모세의 기적을 내 두 발로 걷다 —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후기


처음엔 그저 신기해서 검색만 해봤다.
‘진도에 바다가 갈라지는 길이 있다더라.’
어릴 때 책에서 본 모세 이야기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가보겠지’라는 막연한 바람만 품은 채 몇 년을 지나쳤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다녀왔다.

진도까지 가는 길, 이미 여행의 시작

서울에서 진도까지는 정말 먼 길이었다.
기차 타고, 버스 갈아타고, 중간중간 쉬는 휴게소까지 —
솔직히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왠지 이번엔 꼭 가야겠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내 발로 바다를 가르며 걷는 그 순간을 꼭 느껴보고 싶었다.

도착했을 땐 축제 첫날 오후.
이미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어디선가 국악 연주가 울려 퍼졌다.
진도 특유의 흥겨움이, 도착하자마자 반겨주는 기분이었다.

바다가 갈라지기 전, 그 긴장감

바닷길이 열린다는 시간은 저녁 6시 10분.
그 전까지는 마치 ‘시간을 기다리는 마을’ 같았다.
사람들은 줄을 맞춰 장화를 신고, 사진을 찍고, 조개껍데기를 주워보고,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 순간이 정말 묘했다.
말 한마디 없이, 수백 명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그 장면이.
마치 무언의 의식 같기도 하고, 조용한 기대감이 떠도는 공기 속에서
나는 괜히 숨을 한번 고르게 되었다.

그리고, 바다가 갈라졌다

처음엔 잘 몰랐다.
“어라? 저기 바위가 보이네?” 싶었는데,
그 바위가 점점 더 많아지고,
물이 발목보다 더 아래로 빠지더니… 정말로 길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물결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길이 생겼다.
사진으로 수없이 봤던 장면이었는데,
그 현장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 나는 그냥 멍하게 서서 바라봤다.

사람들이 하나둘 그 길로 들어갔고,
나도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걷는다는 것의 의미

발 아래는 미끄러운 진흙과 조개껍데기.
가끔은 물고기 한 마리가 옆을 휙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양옆에는 여전히 물이 출렁였고,
하늘엔 노을이 퍼지고 있었다.

그때 문득, 걷는다는 게 이렇게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냥 앞을 향해 걷는 일인데,
내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벅찼다.

어쩌면 이 길은, 단순히 물이 빠져 생긴 길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잊고 있던 **‘느림’과 ‘기다림’과 ‘감동’**이 깃든 길이 아닐까.

바닷길 저편에서

2.8km의 바닷길 끝에는 모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다 건너갈 순 없었지만, 중간쯤까지는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엔 물이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이 길은 오래 열려 있지 않다”는 말이 몸으로 느껴졌다.
시간을 잘못 재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도.
그래서 더 특별했다.
짧은 시간, 오직 지금만 걸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게.

다시 육지로 돌아오며

축제장에는 여전히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회를 먹고, 튀김을 먹고,
아이들은 장화에 묻은 진흙을 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내가 지나온 그 바닷길을 바라봤다.

언젠가 또 올 수 있을까?
다시 걷게 된다면, 또 이런 마음이 들까?

그건 모르겠지만
올해의 봄, 나에게 가장 특별한 하루였던 건 확실하다.


경험자 꿀팁

장화는 필수! 현장 대여도 있지만 사이즈 금방 빠져요.
시간 맞춰 가세요! 바닷길 열리는 시간은 하루 한 번. 미리 체크 필수.
여행은 하루 일찍! 진도 숙소는 축제 기간엔 구하기 어려워요.
체험존 놓치지 마세요! 전복, 멸치, 진도김 다 맛봤는데 진짜 최고.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어요.
그건, 잠깐 열렸다가 다시 사라지는
인생 같은 길이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아주 잠깐,
자연의 기적을 걸었던 사람이 되었습니다.

혹시 아직 안 가보셨다면, 꼭 한 번 경험해보세요.
그 길은 단 한 번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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